수요일, 7월 23, 2003


저희 집(수도원)에는 대문이 없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들여다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십자 고상입니다.

지나던 분들이 가끔 이 고상 앞에서
기도를 하다 가곤 합니다.

오늘도 청소하는데 어느 아주머니께서
저에게 미소로 인사를 하시고는
고상 앞에 서시어 기도를 하고는
미소로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가십니다.
무슨 기도를 했는지 모르지만,
얼굴에는 편안함 또는 행복감이
비쳐 보였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잠시 정자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물었는데, 매미가
나를 향해 날아오다 획 돌아가더군요.

제가 무슨 나무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 보니 자기가 매달릴 나무가 아님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는 다른데로
날아가 버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마당 잔디에는 산 비둘기가 지 집인양
웅크리고 앉아 떠날 줄을 모르고,
나뭇 가지에서 매미는 하염없이 울어대고..
모처럼 비 갠 날의 아침 풍경이 싫지 않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상쾌한 날입니다.


.. ..  



  ...


 


동무들 모두 은총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길... :-))



수요일, 7월 02, 2003

부득이하게 집을 수선하게 되었습니다.

공짜를 쓰다보니, 강요당하는군요.

없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음, 이건 비약이다)

그냥 새로운 모습도 괜찮은 듯 싶습니다.

정말 무식하리만치 단순합니다.

화요일, 5월 27, 2003

바그다드 까페

오랜 만에 다시 보았습니다.
다시 보아도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노을과, 바람과 두 여인...
겉보기엔는 여러보이지만 강한 여자, 쟈스민.
여행중 남편과 말 다툼 끝에 헤어지고 우연히 찾아든 바그다드 까페.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바그다드 까페 역시 황량하기만 하다.
그 황량함 가운데 두 여인의 우정을 통하여
황량함은 포근함으로 변하고...

황량한 들판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

다음 주일날 시간내어 다시 한 번 봐야겠습니다.

목요일, 5월 22, 2003

요즘 부르조아가 되었습니다.
무릎이 아프다는 핑게로, 바쁘다는 핑게로 왕복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를 타는데 앞좌석 앞에 국가유공자 훈장이 붙어 있더군요.
한 분은 베트남 참전 용사이시더군요.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자랑하시고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정신이 없어"하시며
한총련은 이적단체고 빨갱이고, 북한은 쳐 죽여야 할 넘들로..

몇마디 의견을 말할라치면 다시 말을 가로채 당신 말만 연신 늘어놓으시고...

그래도 첫번째 아저씨는 말할 기회나 주고, 수긍할 만한 점은 수긍하시던데..

그 참전 용사 아저씨는 쌍욕을 해가면서... 참... ㅡ.ㅡ;;

하나의 이념에 사로잡히고, 또 자기 경험에서 뼈아픈 기억이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경험의 오류"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경험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 때로는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

중요하면서도 그것이 "전부", "절대"가 될 때는
공산당보다 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하루였습니다.

금요일, 5월 09, 2003

어제 비가 억수로 올때
갑자기 카메라가 뵈길래
잠시 찍어 편집해 보았습니다.

비 속의 혜화동도 참 운치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과 밖"

안과 밖이라는 주제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여기서 보면 저기가 밖이고,
저기서 보면 여기가 밖일테고...

안과 밖이 혼란스러운 요즘입니다.

늘 회색분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안과 밖을 딱히 경계지어놓고 사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고....

여튼 그냥 쏟아지는 비를 보며
보이는 대로 담아서
내키는 대로 엮었습니다.

금요일, 4월 11, 2003

산유화(山有花)


산(山)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山)에
산(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山)에서 우는 적은 새요
꽃이 좋아
산(山)에서
사노라네

산(山)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단상 1.
전쟁은 아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의 논리와 국익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제 아이들이 정의가 아니더라도 국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도
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배울 것이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도덕을 가르치고, 윤리를 가르치고, 신앙을 가르치고...
이것들이 다 무엇인가? 양심을 포장하는 하나의 빛좋은 개살구란 말인가?

내 안에 가진 한계성들, 언어적 폭력, 무의식적 차별, 무시, 질투... 욕망들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음을, 아니 내가 못 떠남은 그 집단적 폭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들이 깊어지는 이유는?

단상2.
정의를 위해 불의를 사용한다. 독재를 물리치기 위해 독재가 사용한 폭력을 사용한다.
살인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살인을 한다.

이것이 현대의 비논리적 논리인가 보다.

단상 3.
산에서 피고 지는 꽃.
저만치 피어 있는 꼿.
꽃이 좋아 산에 사는 새.

"저만치"가 도대체 얼마의 거리일까? 마음의 거리일까? 아니면 물리적인 거리일까?
도대체 얼마를 떨어져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을까?

얼만큼 떨어져야 고독하지 않으면서 또 물들지 않을까?

산, 산, 산....
산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인가 보다.
나는 그 산에 피는 꽃을 보기 위해서
봄, 여름 갈없이 피고 지는 꽃을 보고 위해서...

저만치 피어 있는 꽃을 보기 위해서..
그 꽃이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향기가 날 듯 말 듯 하면서 저만치 피어있는데..

산.산. 산
저만치 피어 있는 꽃. 꽃. 꽃...

그리고 새.....

수요일, 3월 19, 2003

이제 신밧드의 모험은 끝나는가 봅니다.
아니면 다시 일어나 양탄자를 타고 날 수 있을지...

이제는 전쟁놀음이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터지기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신문과 뉴스를 지켜보게 되는 이 씁쓸함.

이제는 피가 피같지 않고, 생명이 생명같지 않습니다.
전쟁, 복제, 살인, 낙태....

이제 나와 상관 없는 이의 생명은 한푼어치의 값어치도 없는가 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 되고
사랑과 희생이라는 단어는 바보같은 사람들의 노리개가 된 느낌입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 심정은 자괴감과 비슷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